문화생활
뿌리깊은 나무
혀나
2007. 9. 26. 12:34

역사적 사실들 속에 픽션을 끼워넣어 그럴듯한 이야기로 재구성한 faction(fact+fiction)이라는 장르의 책.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와 얽힌 사건을 추리소설 형식으로 잘 꾸며냈다.
1443년(세종 25년), 궁궐 안에서 집현전 학사가 죽는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그 범인을 잡기 위해 수사를 해나가던 겸사복은 점점 밝혀지는 엄청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주상, 집현전의 대제학과 부제학, 학사들, 그리고 명나라까지 얽혀있는...
일단 책은 재미있다. 이야기를 풀어나감도 맛깔스럽고, 중간중간 손에 땀을 쥐게 하고, 고증도 만족스러워 궁궐과 그 안의 사람들, 조정의 역학관계에 대해서 알아가는 맛도 쏠쏠하다. 다만 역사소설이기때문에 내용이 가볍게 술술 읽히지는 않아서, 짬짬이 읽기보다는 여유로운 시간에 느긋이 읽기를 권함. 예를 들면 오늘같은 휴일에 일찍 일어나버렸을때? ^^;
한글창제가 새로운 세상을 여는 첫걸음이 됨을 믿는 주상과 집현전 학사들, 그리고 혼란의 시작일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대부들.. 그들의 대립.
세상이 하나의 패러다임에 온통 젖어있을 때, 그 패러다임을 따르기만 하면 편안하고 행복한 생활이 보장될 때, 더 큰 뜻을 위하여, 그리고 자신이 믿는 신념을 위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믿고 기존의 통념을 깨려고 노력하는 일은.... 어렵고 힘들고 적을 많이 만드는 일일지라도, 남들보다 더 많이 배울 기회와 더 많은 것을 이해할 능력이 주어졌다면 절대 외면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새로운 글자는 불과 스물여덟 자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세상을 바꿀 엄청난 힘을 지녔네. 그 문자가 반포되면 이 나라는 완전히 새로운 나라가 된단 말일세. 상것들도 노비들도 모두가 글을 읽고 쓰는 세상을 생각해보게. 시전의 상것들이 학문을 한답시고 거들먹거릴 것이고, 농사짓는 노비가 상전과 사리를 따지게 될 것일세. 아래쪽과 위쪽, 양반과 상놈, 임금과 신하의 위계는 뒤죽박죽이 되고 천지는 아비규환의 비명천지가 될 것일세. 모든 공문서에는 이상한 말이 나다닐 것이고, 관가에는 제 이익을 찾으려는 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게 될 것일세....."
내가 이 시절에 태어났다면, 바른 것을 위해서 기성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내가 살고있는 세상에서 내가 택해야할, 믿어야할 바른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본다.